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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번다버그 워킹홀리데이, 농장, 치안, 세컨비자, 여행, 정보

에드Kim 2023. 8. 18.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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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가 2019년에 직접 다녀와서 겪은 일을 수정하여 올린 게시물입니다.

번다버그 기차역

브리즈번에서 기차를 타고 5시간 정도를 달려 마침내 도착한 번다버그.

이동 중에 소를 정말 많이 보았습니다.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모험은 언제나 저를 설레게 만들고, 

특히 이 시기의 경험은 지금까지도 너무나도 멋진 추억으로 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저희를 마중 나온 매니저 형의 차를 타고 백패커스로 이동하였습니다.

번다버그

번다버그는 영화 속에서나 보던 외국 시골의 모습이었습니다.

브리즈번에서 일주일 간 지내던 집의 사람들과 친해져 다시 브리즈번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습니다.

생각보다 해가 빨리 져서 일행들과 콜스에서 간단히 저녁으로 먹을 파스타 재료만 사서 백패커스에서 만들어 먹고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엔 하우스가 백패커스보다 생활이 나을 것이라 생각하여 하우스로 옮겼습니다.

당시 살았던 집

오래된 집이고, 제가 들어간 방은 사람이 오랜 시간 살지 않아 문을 열자마자 파리가 엄청 나왔습니다.

방 안에는 화장실이 있었는데, 문도 없었고요.

그래도 형들과 함께 대청소를 하고, 워낙에 좋은 형들이었어서 행복하게 잘 지냈습니다.

저희 집은 백패커스, 그리고 다른 집들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긴 어려웠고,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끼리 더 친해질 수밖에 없었어요.

정말 다행으로, 기존에 집에 살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너무 좋은 사람들이라 정말 행복하게 잘 지냈습니다.

처음엔 마트도 걸어서 30분을 걸어가야 하고, 너무 시골이라 할 것도 없어서 얼른 비자만 따고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예상보다 더 지내다가 가게 되었어요.

못번다버그

퀸즐랜드에서 세컨비자를 따기 위해 가는 곳은 주로 '카불쳐와 번다버그'입니다.

그런데 이곳들의 별명은 '엄마 돈 부쳐, 못번다버그'입니다.

왜 이런 별명이 생겼을까요?

저는 번다버그에서 지냈기에 이곳 기준으로 설명드리겠습니다.

블루베리 팜에 들어가기 전 저는 '바베라 팜'에서 밭작물을 하며 웨이팅을 했는데요,

1 버켓 당,

캡시컴: 1불

미니 캡시컴: 4불

칠리: 5불

주키니: 2.2불

을 단가로 받았습니다. 참고로 세금 15% 떼기 전입니다.

최저시급 그런 거 없었습니다.

지금은 아무리 못해도 최저시급은 준다고 하는데,

그 당시 기준으로 설명드리면 밭에 수확할 작물이 100이고,

1당 워커에게 지급하는 돈이 1이라고 가정하겠습니다.

농장주 입장에선 100을 따면 100만 지급하면 되기 때문에,

워커들을 10명을 쓰든, 100명을 쓰든 지출하는 돈에는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단가도 제가 갔을 때 기준, 10년 전에도 단가는 그대로였다고 하고요.

정말 죽어나는 거죠. 몸은 몸대로 망가지도 돈은 못 벌고.

그래서 상위권에 있는 사람들만 돈을 버는 구조였고, 그 외 사람들은 돈을 못 벌고 오히려 적자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최저시급을 보장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고 하니 정말 다행입니다.

저는 참고로 첫날에 9시간 일하고 세전 54불 벌었습니다....

 

모든 밭작물은 어려웠고, 힘들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작물은 주키니인데, 장비마저도 개인이 구입해서 사용해야 했습니다.

버켓을 허리 양 쪽에 차고 일을 하기 때문에 K마트에서 재료를 사서 장비를 직접 만들어야 했습니다.

벨트, 캠핑용 후크, 두꺼운 테이프, 요가 매트리스, 주키니 칼

요가 매트리스는 한 개를 잘라서 벨트 주위를 감싸는 용도로 사용하기 때문에 여러 명이서 구입해서 잘라서 사용하시면 됩니다.

벨트는 내가 혼자 착용하기 힘들 정도로 타이트하게 해야 일할 때 흘러내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두꺼비 개구리가 많이 나와서 양서류와 파충류를 극도로 싫어하는 저에게는 지옥이었습니다.

처음엔 정말 힘들고 돌아가고 싶었는데, 그래도 좋은 사람들과 지내며 같이 일 하니 어느새 탑피커가 되어있는 제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블루베리 팜이 열리기 전,

인원수에 따라 먼저 온 사람들은 시트러스 팜에서 일을 하다가 먼저 블루베리 팜인 진진팜에 들어가서 조금씩 쉬프트가 늘어나는 식으로 일을 시작했고,

초과되는 인원은 저처럼 바베라 팜에서 일을 하며 진진팜에 들어가기 전까지 웨이팅을 했습니다.

나무작물이 밭작물보다 일의 강도도 낮고, 돈도 더 벌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주에 50불을 세이빙 하기도 어려원 상황이라 같이 온 사람들과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거나,

바베라 팜에서 주키니, 캡시컴, 칠리 등을 따와서 반찬을 해서 먹곤 했습니다.

 

먼저 들어온 집안 식구들은 저희에게 아무런 대가로 바라지 않고 맛있는 요리를 계속 대접해 주셨는데,

보답을 하고 싶어도 당장 방값 내기에도 벅찬 벌이에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어서 너무 미안하고, 그 호의가 불편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그분들은 저희랑 친해지려고 음식도 해 주고 이것저것 챙겨줬는데, 저희가 불편해하니까 자신들은 안 좋아하는 줄 알았다고 하네요.

나중에 진진팜에 들어가고 어느 정도 돈을 벌 수 있게 됐을 때 저희도 음식을 대접했고,

같은 시간에 같은 곳으로 출퇴근하며 같이 일을 하며 친해지니 그때부터 일상이 정말 행복했습니다.

블루베리 팜에서 두꺼비, 개구리, 도마뱀이 더 많이 나오는 것만 빼면 완벽했습니다.

바가라

바가라에서 154 가족들과

쉬는 날엔 '바가라'라고 하는 바다에 같이 놀러 가곤 했는데,

캠핑도 할 수 있고, 바베큐 시설도 갖추어져 있어서 놀기에도 정말 좋았습니다.

심지어 이 시설을 이용하는 비용은 무료라는 것.

나이트마켓

나이트마켓

번다버그의 몇 안 되는 놀 수 있는 곳 중 한 곳인 나이트마켓.

펍처럼 노래를 불러주는 가수도 있고,

몇몇 음식도 사서 맥주와 먹을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칠리맥주를 처음 마셔봤는데, 맥주가 칼칼했습니다.

한국의 회오리 감자도 팔고, 한국 음식을 파는 노부부도 계셨는데,

한국인이신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골에 자리를 잡고 그렇게 지내시는 것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대도시에서의 인종차별은 많이 줄었지만,

옛날부터 호주는 백호주의가 정말 심해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로 알려진 곳인데,

제가 지내는 동안에도 출퇴근 시 맞은편에서 오는 자동차의 운전자가 이유 없이 욕을 하는 경우,

지나가는데 경적을 요란하게 울리며 소리를 지르고 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며 저분들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지더군요.

치안

번다버그는 치안이 좋지 않습니다.

제가 지내던 2019년에 번다버그에 도착해서 들었던 말 중 하나가 절대 밤에 혼자 돌아다니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학생들을 조심하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나중에 제가 농장을 떠나고 나서 들은 얘기인데, 늦은 시간에 누가 혼자 돌아다니다가 학생들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절대 밤에 혼자 돌아다니지 마세요.

블루베리

두 달이 넘는 웨이팅 끝에 진진팜에 입성했습니다.

초반에는 블루베리 열매가 많이 열리지 않아 5일 중 4일은 잡초제거 작업을 했는데요,

시급제라서 그냥 쪼그려서 블루베리 화분에 자란 잡초들만 제거해 주면 되는 작업이었습니다.

위딩(잡초 제거 작업)과 블루베리 피킹하다가 만난 아기 새

쪼그려 앉아서 일하기 때문에 허벅지가 많이 아팠고,

시선이 아래쪽을 향하다 보니 보기 싫은 개구리, 두꺼비 등을 더 많이 마주칠 수 있었지만,

그래도 밭작물을 하는 것보다 훨씬 쉽고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초반에 익숙하지 않은 실력에 등수가 바닥에 머물렀지만,

밭작물을 하며 최상위권에 있을 때보다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쉬프트가 늘어나서 하이시즌엔 주 5일 일 하고 페이슬립에 주급이 1,000불 이상이 찍힐 정도였으니까요.

양서류랑 파충류만 없었어도 더 벌었을 것 같네요.

실시간으로 나오는 등수

실시간으로 저렇게 누가 얼마나 땄는지 등수가 나와서 경쟁심 많은 한국인들은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었습니다.

후기

번다버그

처음엔 세컨비자 일수인 88일만 빨리 채우고 브리즈번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같이 일하며 재밌게 지내다 보니 거의 반년을 머물렀네요.

제 인생 중 행복했던 시기를 꼽으라고 하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 있고 싶었지만, 시즌도 끝나가고, 친해진 사람들도 하나 둘 떠나게 되면서 결국 저도 정든 번다버그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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